(리더)가장 앞에서, 가장 먼저 길을 열어라!!!

2025. 11. 2. 09:51경제

 시중에 무수히 나와 있는 리더십에 대한 책들을 유심히 들여다보면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그 많은 책이 하나같이 공통된 단어를 공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먼저라는 단어이다.

 리더가 하는 일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비전을 제시하고, 동기부여를 하고, 직원 발전에 노력하고, 하지만 이런 것들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사람 그 자체다. 역할이 다소 부진하더라도 그 사람을 인격적으로 사랑하고 존경한다면 리더십은 발휘될 수 있다. 반대로 아무리 일을 딱 부러지게 하더라도 인간 자체가 매력이 없다면 리더십을 발휘될 수 없다. 그렇다면 리더십의 본질은 그 사람의 인격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그것을 말해 주는 단어가 먼저’, 혹은 솔선수범이다.

 

 리더는 앞서 걸으면서 온몸으로 고난과 고통, 시련과 맞서야 한다. 그런 과정과 모습이 힘의 원천이다. 칭기즈칸은 한 번도 고난을 피하지 않았다. 꿈으로 무장한 동지들과 수평적인 인간관계를 유지하며 도전의 고삐를 한시도 늦추지 않았다. 그 고통을 극복한 순간 징기즈칸은 인류가 낳은 최고의 벤처사업가가 됐다. 고통의 길을 선택할 때만이 성공을 거둘 수 있다. 고통을 비껴가지 않고, 도망치지 않고 정면으로 부딪칠 때만 성공을 기약할 수 있다. 징기즈칸은 중국이나 이슬람 등 제삼자들이 쌓아놓은 기존의 문명을 발판으로 자신의 사업을 구축했다. 핵심기술과 모험정신 그리고 중앙아시아 대초원이라는 인프라까지 갖춘 벤처 기업가였다.

 

 몽골 여행 중에서 가장 힘들지만 그만큼 재미있는 코스로 단연 고비사막 횡단을 꼽는다. ‘풀이 자라지 않는 땅이라는 의미의 고비는 말 그대로 사막이기에 역전 앞같은 중복표현이기도 하다. 고비는 몽골 내륙에 있으며 동서 1,600km, 남과 북이 5001,000km 이다. 고비 여행의 가장 큰 매력은 모험과 도전을 끊임없이 부추기는 데 있다. 툭 하면 차가 고장 나고, 길을 잃고, 모래바람과 무더위에 지치고, 하루에 12시간 동안 차를 타거나 밥을 굶기 일쑤다. 그곳에서는 우리 몸에 밴 문명의 상식들은 사막의 먼지처럼 날아가고 초토화된다.

 난생처음 시도했던 사막 횡단, 그곳에서 문득 벤처라는 단어가 생각났다. 상식을 뛰어넘는 것, 그것이 벤처 정신이라면 아마도 인류 최초의 벤처사업가는 유목민들이었을 것이다. 인간은 자신의 테두리 안에서 살기 마련이다. 그런 인간에게 눈에 보이는 수평선, 지평선은 세계의 전부다. 수평선을 뛰어넘는다는 것은 용기가 아니라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유목민들은 어찌 보면 오직 아이디어와 기술만을 지닌 채 무한한 가능성을 향해 모험을 떠나는 사람이다. 지평선 바깥에 무엇이 있는지 아무도 몰랐던 시절에 그 지평선 밖으로 뛰어넘을 수 있는 도전 의식과 용기, 그리고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 그런 면에서 유목민과 벤처사업가는 유전자를 공유한다. 몽골 유목민들은 말 타는 기술, 말의 등자(발걸이), 무기, 전술, 정보력, 간편한 식량 등을 갖고 무한의 초원을 달렸다. 그리고 인류사상 최초의 벤처 제국 팍스 몽고리카를 건설했다. 징기즈칸은 그 맨 앞에서 길을 열었다.

 

 아이크(lke)라른 애칭으로 불렸던 미국의 제34대 대통령인 아이젠하워는 역사상 최고의 지휘관 중의 하나로 꼽힌다. 그는 병사들을 힘으로 누르는 대신 사기를 드높여가며 지휘한 것으로 유명하다. 어느 날 아이젠하워 장군에게 부하 장교가 어떻게 하면 리더십을 갖출 수 있는가를 물었다. 그러자 그는 책상 위에 끈을 놓고 부하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 끈을 뒤에서 한번 밀어보게.”

 부하는 시키는 대로 밀었지만 곧바로 나가지 못하고 비틀리고 뭉쳐져 버렸다.

 “이번에는 한번 끈을 앞에서 당겨보게.”

 부하는 이번에도 시키는 대로 끈을 앞에서 당겼다. 끈은 곧고 바르게 이끄는 대로 왔다. 아이젠하워가 말했다.

 “지도자는 이렇게 앞에서 이끌어야 하네.”

 

 한 중소기업 사장이 있다고 치자. 그는 비싼 외제 차를 타고 자녀들은 모두 외국의 사립대학에 유학을 시키고 있다. 또 걸핏하면 영업 활동임을 내세워 주중에도 골프를 치느라 자리를 비운다. 그리고 회의를 주재할 때면 사업이 어렵고 불경기여서 인원 감축을 해야 한다는 말만 늘어놓는다. 직원들에게 허리띠를 졸라매고 회사를 위해 피와 정열과 땀을 쏟아부으라고 다그친다. 이런 사장의 모습에 감격해 소매를 걷어붙이는 직원은 단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일부에선 아무리 칭송해 봤자 몽골제국은 150년 만에 결국은 망하지 않았는가?’라고 꼬집는다. 현재 몽골은 남아 있지만 칭기즈칸도 죽고 화려했던 당시의 영화도 사라졌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진지하게 생각해 보자. 지상의 모든 집단은 언젠가는 소멸한다. 영원한 것이란 없다. 유념할 것은 그 집단이 얼마나 오래존재했는가는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집단으로 인해 얼마나 크게패러다임이 변화했고 인류의 삶에 영향을 미쳤는가가 훨씬 더 본질적인 문제다. 칭기즈칸과 당시의 몽골 유목민들은 완벽하게 새로운 패러다임을 완성했으며, 그것이 미친 결과는 상상을 뛰어넘는다. 지리상이 발견, 대항해시대의 개막, 유럽 농노제도의 붕괴와 자본주의의 출현 등도 따지고 보면 징기스칸과 몽골 유목민들의 작품이다. 적어도 통상적인 국가의 멸망과는 다르다.

 지금도 몽골 초원의 여행은 끊임없는 도전을 요구한다. 지평선을 넘으면 또 다른 지평선이 나타나고, 그것이 하루 종일 이어진다. 도대체 끝이 없다. 모든 게 가능성이고 모든 게 절망이다. 유목민들은 가능성과 절망을 동시에 짊어지고 바람에 역사를 새겨왔다. 걸으면서 미래를 꿈꾼 사람들이다. 고통의 침대에서 꿈꾸는 자들만이 아침의 태양을 볼 수 있다. 도전의 성공은 그렇게 온다. 징기즈칸은 누구보다 앞장섰고 누구보다 먼저 길을 열었다. 그래서 그는 리더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는 아직도 미래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