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10. 28. 01:20ㆍ경제
중남미에서도 1970∼1980년대에 하이퍼인플레이션이 벌어졌다. 중남미 각국의 경우는 식민지 시대부터 이미 양극화된 사회였다.
중남미는 식민지 시대 이래로 가벌(家閥) 집단이 존재한다. 식민지 당시의 스페인, 포르투갈 귀족 후손들이 모체가 되어 가벌 집단을 형성해서 오늘날까지 내려오고 있다. 브라질의 경우를 보면 0.05%의 최상류층이 전국 토지의 대부분을 소유하고 있을 정도이다. 그 외 아르헨티나, 멕시코, 칠레 등 여타 국가들 역시 상황이 이와 유사하다.
20세기 들어 중남미 각국 정부 역시 공업화 정책을 추진했지만, 대기업주의 자리 역시 이들 가벌집단이 차지했다. 그 결과 19세기까지 토지 소유 불균형에 따른 빈부격차가 20세기 들어 일정 정도의 산업화를 거치는 동안에도 더 심화하기만 했다.
이처럼 국가의 토지와 부가 극소수의 과두 지배층에 집중된 상태에서 중남미 각국은 줄곧 높은 인플레이션에 시달려왔다. 1970∼1980년대의 하이퍼인플레이션이 유명하지만 실상은 19세기 말 이래로 줄곧 고물가에 시달려온 것이다. 그 이유는 주로 환율 폭등(자국 화폐가치의 폭락) 때문이다.
중남미에서 환율 폭등이 자주 나타났던 이유는 가벌지주들이 소유한 대형 농장의 수출 의존도가 높았기 때문이다. 국제 농산물 수출시장에서 시세가 하락하여 농장주들에게 손실이 발생하면, 이 손실이 농장 노동자와 대중에게 전가하기 위해 환율 폭등이 일어났던 것이다.
국제 농산물시장에서 달러를 받은 가벌지주들이 농장 노동자들에게 지급하는 임금은 폭락한 자국 화폐로 지급함으로써 손실은 농장 노동자들에게 전가된다. 농장 노동자들이 자국 화폐로 계산하는 임금은 그대로지만, 실질임금은 폭락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현상은 우리 한국인들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21세기 한국에서도 똑같은 현상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988년과 2008년의 상황이 그러했다. 수출시장이 어려워져서 대기업들이 손실을 보게 되면 어김없이 환율 폭등이 일어나고 있다. 그 결과 국제 수출시장에서 달러로 수출대금을 받은 대기업들이 직원들에게 지급하는 임금은 폭락한 한국 원화로 지불함으로써 손실이 전원들에게 전가된다. “대기업이 정부보다 훨씬 세다.”는 현 정부보다 세다는 말이 있다. 앞으로 수출시장이 어려워지면, 그 때문에 우리나라 대기업에 위기가 닥치면 또다시 환율 폭등이 일어날 것이라고 예측해 볼 수 있다.
위 도표는 보면 아르헨티나의 물가 상승률 추세를 보여 준다. 1944년에서 1954년까지 10년 동안은 연평균 20% 정도의 인플레이션을 보이고 있다. 이후 20년간은 연 30% 가까운 정도의 인플레이션을 보이던 아르헨티나가 1974년부터 하이퍼 인플레이션 양상을 보이고 있다. 1차 오일 쇼크로 경제가 위기 상황에 부닥치자 당시 아르헨티나의 페론 정부는 재정 지출을 위한 재원 마련이 곤란해졌다. 여기서 같은 패턴이 반복된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아르헨티나의 국부를 대부분 차지하고 있는 과두 지배층들에 세금을 더 거두면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세금 인상에 저항했고, 아르헨티나에선 이들의 지지를 얻지 못하면 정권을 유지할 수 없었다.
결국, 페론 정부는 재정 조달을 위해 세금 인상 대신 돈을 찍어내는 길을 택했고, 그 결과 곧바로 하이퍼인플레이션으로 직행한 것이다. 1974년∼1984년까지 연평균 218%의 하이퍼인플레이션에 시달렸다.
먼저 하이퍼인플레이션을 겪었던 독일과 러시아의 사례를 한번 보자.
1. 독일의 하이퍼인플레이션
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막대한 전쟁 배상금을 지급하기 위해 계속 국채를 발행했기 때문에 국가부채가 엄청난 양으로 늘어서 이자 지급 부담이 매우 컸다. 세계 각국은 독일 정부의 국채를 인수하지 않았고, 금융시장에서 국채 발행에 실패하게 된 독일 정부는 코너에 몰린 나머지, 무이자 국채를 발행하고 독일 중앙은행이 직접 인수하도록 해서 돈을 가져가 버렸다. 그리고 바로 이 행동 때문에 독일 국민은 하이퍼인플레이션에 시달리게 되었다.
2. 러시아의 하이퍼인플이션
1991년 이후 러시아 정부는 자본주의로 체제를 전환하는 혼란기의 와중에 막대한 재정적자에 시달리게 되었다. 1992년 옐친 정부의 재정 적자가 GDP 대비 20%에 이르렀는데, 이 부족분을 메우기 쉽지 않았다. 러시아의 경우도 독일과 똑을 길을 걸어간 것이다. 국채를 금융시장에 발행한 것이 아니라 중앙은행에 강제로 떠안기고 돈을 마음대로 가져다 써버렸다. 화폐 발행에 관한 법률 규정을 위반한 범죄행위를 저질렀고, 그 때문에 인플레이션을 억누르는 이자율의 기능이 작동하지 못한 것이다.
독일,러시아와 조금 다른 점은 과두 지배층이 이미 나라 전체의 부동산을 다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들이 부동산을 사들이도록 특혜 금융을 많이 제공할 필요도 없었다는 점이다. 따라서 중남미 하이퍼인플레이션의 특징은 통화 증발이 상대적으로 그리 많지 않았고, 대신 환율이 폭등했다. 1980년대 초 미국이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한 고금리정책을 취하자, 국제 원자재와 농산물 가격이 폭락하게 된다. 그에 따라 중남미 각국 과두 지배층의 대농장 경영에서 손실이 발생하자 어김없이 환율이 폭등했다. 결국 정부의 적자 재정 조달과 가벌지주들의 이이에 부합하는 환율 폭등이 겹치면서 하이퍼인플레이션으로 치닫게 된 것이다.
아르헨티나의 하이퍼인플레이션은 그림에서 보여주는 1985년 이후로도 계속 이어져서 1989년에 연 3,080%의 인플레이션 기록을 세웠고, 브라질의 경우는 1993년에 2,500%의 하이퍼인플레이션이 진행되었다. 결국 조금 남아 있던 중남미의 중산층은 하이퍼인플레이션 때문에 모두 몰락하고 말았다. 브라질에서는 하위 50%가 점유하고 있던 자산이 1960년에 18% 수준이었는데, 1995년이 되면 11%로 더 떨어지고 말았다. 상위 20%가 점유하던 자산은 54%였는데, 63%로 더 늘어났다. 그렇지 않아도 극심했던 양극화가 더 심화되고 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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